인간은 이야기로 세계를 나눈다.
인간은 본래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토리텔러’를 자처합니다.
존재하지 않던 개념들을 발명하여, 세계를 ‘시간’과 ‘순서’, ‘정도’, ‘경계’와 같은 틀로 나누고 쪼갰습니다.
이는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였지만, 결국 인간은 자신을 세계에서 분리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정체성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제부턴가 진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초로 땅에 금을 그으며 "여기까지는 내 땅, 저 너머는 네 땅"이라 말했던 자는 미쳤다고 여겨졌겠지만,
그 미친 이야기에 모두가 동의했을 때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이야기로 짜인 허상이며, 인간은 그 허상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야기로부터의 자유, 그것이 희망이다
이 모든 것이 허상임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인간의 원죄는 자신이 세계와 하나였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희망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허상임을 아는 순간, 인간은 그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루미와 진우: 죄책감의 이야기에 갇힌 자들
작중 루미와 진우는 각자의 ‘죄책감 이야기’에 갇혀 있습니다.
루미는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고 믿고,
진우는 과거에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죄책감조차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만들어낸 내면의 목소리는,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허상임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다면, 그 순간 모든 것은 끝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에 시달립니다.
그 가벼운 형태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불킥'입니다.
진우는 기억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려고만 하죠.
그래서 작중에서 진우를 움직이는 기본 동기가 귀마에게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망각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루미도 자신에게 원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었지만
이를 속삭이는 존재는 다름아닌 셀린 이었습니다.
진우가 루미에게 "넌 귀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냐?"고 궁금해 했지만
루미는 귀마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셀린의 목소리는 찰떡같이 듣고
자신이 "잘못된 존재"라는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믿고 있었던 거죠.
Golden의 가사가 말하는 것
이쯤에서 Golden의 가사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저는 Golden을 이 세상 "이야기"의 끝을 노래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초반 가사에서 화자는 "나는 유령이었고 혼자였다(I was a ghost, I was alone)"고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을 ‘개별자’로 인식하며 본래 하나였던 존재로부터 분리된 상태를 뜻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에서 개별 자아는 유령입니다.
이어지는 가사에서 이를 다시 뒷받침하는데
‘여왕’으로 태어났지만 그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Given the throne, I didn't know how to believe
I was the queen that I'm meant to be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인데 자기가 개별자아로 스스로를 인식한거죠.
개별 자아가 사라지면 존재 자체가 소설로 모두 거짓이었던 세상의 모든 이야기 역시 사라집니다.
이야기가 사라지면 그 이야기로 비롯된 두려움 역시 사라지게 되죠.
이 부분이 다음과 같은 가사로 표현됩니다.
no fears, no lies
That's who we're born to be
"이야기가 없는 상태"가 우리의 본모습이며 이는 영원히 깨지지 않고 빛나고 있다는 겁니다.
따라서 Golden은 우리의 순수한 본래의 모습을 표현한 노래입니다.
다소 장난 스럽게 요약하면 "꿈깨!" 라고 할 수 있겠죠 ㅎㅎ
루미는 진실을 전하는 노래를 부르지만 정작 자신은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노래 가사에서는 "더는 숨지 않는다"고 하지만 옷으로 자신의 패턴을 감추는 것을 보면
"natto" 유튭 캡쳐
루미는 이 노래를 100% 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 의 힘은 위대하지 않다.
작중에서 진우와 루미의 관계는 미묘하게 묘사됩니다.
비지니스와 로맨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데 솔직히 로맨스에 조금더 가깝죠.
이 둘 관계의 진전은 어느정도의 치유를 동반하지만 정작 루미의 각성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루미는 목소리가 돌아오고 진우는 귀마의 목소리가 일시적으로 차단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만
루미의 내적 갈등은 여전했고 진우는 루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자 다시 귀마의 목소리를 듣게됩니다.
이는 개별자아로서 지각하는 사랑이 어떠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신을 개별자아로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이 결핍되어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개별자아가 자신의 결핍을 보상 해줄 수 있다는 자신만의 환상 내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사랑의 행위로 지각합니다.
이런 결핍 보상 행위를 "사랑"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보상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손상될 때 "사랑"이 손쉽게 "증오"가 되거나
자신이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작중의 로맨스가 루미의 각성을 촉발시키지 못한 것은 필연적입니다.
이야기가 허상임을 인식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일은 오직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은 그 여정에서 일시적인 거울이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해방의 열쇠는 자신 안에 있습니다.
루미의 각성
이야기는 누가 처음 만들었든, 일단 믿는 순간 마음을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루미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원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믿었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은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안에 갇혔습니다.
루미가 자신의 이야기로 가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믿는 자는 타인 역시 자신의 이야기 속에 가두게 됩니다.
'부족한 나'라는 이야기에서 자신을 채울 대상인 진우, 셀린, 미라, 조이는 이 이야기 속에서 퇴장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루미는 거짓말로 이야기 속 등장인물을 통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로 구축된 관계는 결국 그녀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마침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루미는 비로소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내려놓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귀마는 루미 앞에서 조롱하듯이 속삭입니다.
"너 그꼴이 뭐냐 니 앞가림도 못하면서"
"혼문 이제 없어"
루미는 모든 질문에 긍정합니다.
귀마가 마음의 목소리에 대한 상징인 만큼
이 대답을 통해 루미는 '부족한 나'를 마음으로 수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는 조건부로 자신을 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하면 사랑하겠다.'가 아닌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루미의 죄책감 이야기는 근본부터 무너졌고
어둠안에서 추하게 보였던 것이 풀려나 빛으로 드러납니다.
루미는 처음부터 자유였습니다.
내일이 마지막 글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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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데요? | 25.07.05 03:04 | | |